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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일

주인 잃은 밭에 노란꽃 닥나무 종이꽃 피네

by slowmrlee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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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0일의 일이다. 내가 사는 오두막 옆에 잡초가 무성한 주인 잃은 밭이 있었다. 탐스럽게 핀 노란색 꽃에 이끌렸다. 닥나무 꽃이었다. 닥나무는 본 적이 있지만 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때의 느낌을 17자 시로 표현한 것이다.

처음 본 꽃이라 했지만 분명 아닐 것이다. 그 전에도 보았지만 보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에 홀려 저 먼곳 어딘가에 가 있었으니까. 사랑에 홀렸거나 멋진 자동차에 홀렸을 것이다. 

뭔가에 홀리면 몸은 지금 여기 있지만 의식은 과거나 미래에 가게 된다. 그러니 주위에 꽃이 있는지 별이 있는지 달이 있는지 모를 수 밖에 없다. 머리를 한 대 맞으면 순간 돌아 오지만 이내 또 달아나고 만다. 인간의 의식이 이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아주 작은 꽃과도 대화할 수 있고, 지저귀는 새소리의 의미를 느낄 때 삶이 삶답지 않겠는가?

더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 시키고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참다운 삶인가? 진정 행복한 삶인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자유로운 삶인지 많은 명상을 하게 된다. 자유로운 삶! 이란 뭘까? 돈으로부터 구애받지 않는 삶!,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속받지 않는 삶!, 질병에 걸리지 않는 삶!,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 .............

필요 이상의 돈을 욕심내기 때문에 돈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두 개가 필요 없다. 한 개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 가령 아내와 자식을 '나의 것' 이라고 여기면 다른 이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나의 것'이란 없다. 그것 또한 욕심이다. 자연의 순리에 벗어난 행위를 한 결과로 육체에 병이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 질병으로부터 탈출하게 된다. 죽음은 육체가 죽는 것이다. 죽어가는 육체를 지켜보는 자가 있으니 바로 본래 나인 것이다. 그러니 본래의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붓다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다. 그들은 영원한 삶을 얻었다. 이미 2,500년 전에. 누구나 할 수 있다.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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