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어제 아침 보다 무려 십일도나 차이가 난다. 어제는 세찬 바람과 천둥이 잠깐 동안 비를 몰고 왔다.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 가뭄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음력으로 이월 스무이틀이다. 기울어가는 달이 아침 산책길을 따라 붙는다. 산 위에서도 호수 밑에서도 노란 불을 밝히고 함께 걷는다. 날씨는 춥지만 자연은 제 갈길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새 하얀 목련과 노란 수선화는 매화가 가는 길을 따라붙고 있다. 이렇듯 자연은 잠시도 멈춤이 없다. 시시각각 변한다. 꽃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가만 있지 않는다.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오직 인간만 진리를 외면하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했듯이 아름다운 꽃도 그 붉음이 십일을 가지 못하고 하늘을 찌를듯한 권력도 십년을 넘기지 못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이 영원할 것 처럼, 돈과 명예와 권력이 영원할 것 처럼, 사랑이 영원할 것 처럼 착각에 빠져 있다. 언젠가는 늙고 병든다는 것을, 언젠가는 돈과 명예와 권력이 사라진다는 것을. 언젠가는 사랑이 미움으로 바뀐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돈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고, 사랑에 집착하는 순간 사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고통만 뒤따를 뿐이다.
늙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진시황도 결국은 늙어 죽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양귀비의 아름다움도 결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언제까지나 지켜줄 것만 같았던 권력도 알렉산더를 죽음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엄청난 부를 짊어지고 갈 것만 같았던 스티브 잡스도, 이건희도 빈 손으로 떠나야만 했다. 이것이 변함없는 진리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영원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삶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너무 간단하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젊음도, 아름다움도, 권력도, 명예도, 돈도 그 자리에 영원히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제일 슬픈 일은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 자식 간의 관계에도 자비는 사라졌다. 모든 관계에는 돈이 연결되어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돈, 형제 간에도 돈이 우선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자비는 사라졌다. 어떤 필요나 조건 없이 무조건 주기만 했던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럴진데 형제 간에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네 형제가 있었다. 두 형제는 잘 살고 두 형제는 못 살았다. 어느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한 달 정도 입원했는데 가까이 살고 있는 맏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병 간호를 했다. 맏이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을 대신해서 가장 역할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하다는 내색 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나머지 세 형제는 기껏해야 어머니께 가끔 전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어머니와 돈 관계로 틀어져 연락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 퇴원하게 되었다. 맏이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병원비를 지불했다. 맏이는 어머니를 간호하고 병원비를 내고 하는 것이 무슨 필요나 조건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께 모든 것을 드리고 싶은 자비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른 형제들로부터 병원비에 대한 전화가 왔다. 얼마씩 내자는 둥, 자기는 얼마를 내겠다는 둥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맏이는 속이 상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형편이 되면 다 내면 되는 것 아닌가? 이렇듯 자비는 사라진지 오래다. 너무 슬픈 현실이다. 돈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쓰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고정시키려고 하는 그 마음이 문제를 일으킨다. 변한다는 진리를 자각하면 고정시키려고 하는 집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변화를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 삶이 무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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