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몇 알의 감자가 한 뙈기 밭을 채우는구나] - 감자를 심을 때 받은 느낌을 표현한 17자 짧은 시
겨울내내 아랫방에 고이 모셔 두었던 씨감자를 꺼냈다. 싹이 날 부위를 조각낸다. 한 개의 통감자가 여러 개의 씨감자가 되는 것이다. 양식이 부족하던 옛날에 선조들이 알아낸 삶의 지혜다. 며칠 전 만들어 놓은 밭에 구덩이를 파고 하나씩 심는다. 두 세달 지나면 하얀색과 보라색 감자꽃이 필 것이다. 꽃은 또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모내기 하는 오육월 쯤 되면 알이 굵은 감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모내기 철이 되면 비가 자주 내렸다. 지금 처럼 비닐로 된 비옷이 없어 비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몇 시간 동안 허리를 구부린 채로 모내기를 하다 보면 춥고 배고프고 온몸이 아프다. 그 때 어머니가 갓캔 감자로 수제비를 끓여 머리에 이고 논길을 걸어 오셨다. 춥고 배고픈 그 때는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한 음식이었는지 모른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와 감자 수제비는 추억이고 눈물이다.
오두막에 핀 매화와 산수유꽃은 벌써 한잎 두잎 떨어지고 있다. 반면 명자꽃과 자두꽃은 곧 터질 것 같이 꽃망울이 부풀었다. 밭 둑에는 하얀 민들레와 노란 민들레가 날개를 활짝 편다. 해가 뜨면 꽃잎을 열고 해가 지면 꽃잎을 오므린다. 길 모퉁이에는 한 묶음의 노오란 수선화가 나풀거린다. 담벼락 구석진 곳에는 진한 녹색의 상사화 줄기가 무성하다. 이 무성한 줄기는 곧 소리없이 사라질 것이다. 가을이 되면 사라진 그 자리에서 상사화가 핀다. 봄에 올라오는 줄기와 가을에 피는 꽃이 서로 만날 수 없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저 건너 서원 담벼락에는 크고 하얀 목련이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이렇듯 자연은 오고 간다. 그래서 덧없다고 했던가! 그 덧없음을 알고 집착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렇지만 허무한 느낌을 어찌 하랴. 아직 나는 깨달음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더 정진하고 정진 해야겠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고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꽃이 피면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므로 자연의 흐름에 따르면 된다. 꽃이 피면 피는대로, 꽃이 지면 지는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눈보라 치면 치는 대로, 물결치면 치는 대로 흘러가면 된다. '너무 애쓰지 말라' 고 했다. 올 것을 막는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갈 것을 잡는다고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지 말자. 집착하면 할수록 근심과 걱정만 커진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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